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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다섯 (in Spain)

# 128> 흔적

by 엘트리고 2020.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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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November 16, 2020

 

최근 웹에 온갖 잡다한 기록들을 많이 남겨 두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사실 그 조각들은 더 많이 있었는데 가장 흔적들을 많이 남겨 두었던 싸이월드와 구글 플러스가 갑자기 사라짐에 따라 아주 많은 흔적의 조각들을 잃어버린 게 사실입니다. 그래도 오랫동안 작성하고 있는 칼럼은 이곳 새로운 블로그로 옮겨왔고 전공과 데이터, 통계에 대한 내용들은 다른 블로그에 열심히 기록하고 있는 중입니다. 일상의 생각과 기록들은 다른 나만의 웹 공간을 이용하여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런 흔적들을 계속 남기는 이유가 이런 작은 조각들이 모여 언젠가 나의 기록의 역사가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오늘 13년 전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새로 시작한다는 것의 즐거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낙서 가득한 종이를 버리고 새로운 흰 백지에 무언가를 다시 적을 수 있는 기대감 때문에 아침이 월요일이 매달 첫째 날이 그리고 새해가 즐겁다고 했습니다. 

13년 전 이 흔적을 지금 내가 다시 복기해 봤을 때 이때의 나와 지금의 나 자신이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그 사고의 갭이 무척이나 벌어져 있음에 놀라게 됩니다. 분명 20대 시절과 40대 시절 생각하는 것이 다 들 수밖에 없고 세상과 특정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세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더라도 지금 시간의 흐름에 무척이나 심적 부담을 느끼는 현 상황과 13년 전 그 시간의 흐름이 즐겁다고 한 그때의 상황의 갭을 어떻게 인정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입니다. "젊음을 잃는다는 것은 단지 물리적 시간의 흐름에 나이를 먹는 과정이 아니라 특정한 새로움에 대해 점점 그 흥미가 줄어드는 과정"이라는 말이 기억납니다. 최근 청춘이 소멸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에 약간의 슬럼프를 맞이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면 이 슬럼프는 단지 시간이 흘러간다는 그 현상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더 이상 새로운 것에 관심이 가지 않는, '청춘의 특권이 소멸되어 간다는 것'에 대한 반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 내가 적어 놓은 칼럼들을 잃어봐도 20대 시절 내 글의 논조와 지금 내 글의 논조에 무척이나 큰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당시 늘 "꿈, 열정, 에너지"라는 단어들이 글에서 주를 이뤘다면 지금의 글에는 그런 단어들을 찾아볼 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내 꿈과 열정 그리고 에너지를 상실한 것일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당시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실체에 가까운 나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 내가 말했던 꿈, 열정에 대한 실체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면 그 단어는 껍질만 존재할뿐 아무런 내용물이 없는 미사여구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그런 단어들이 좋아서 그런 단어들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좋았을 뿐이었던 것이지요. 비록 그 당시 내가 목표했던 견고한 꿈이 있었다 할지라도 매트리스 속이 아닌 현실 세계를 경험한 뒤 그 꿈을 다시 생각해 보면 그것 또한 현실에서 한참 벗어난 허무맹랑한 생각이었음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런 무모하고도 알맹이 없었던 그 시절의 흔적들이 지금의 내 모습과 다르다고 해서 그때의 흔적들을 일부러 지울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20대 시절은 흐릿한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실존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지만 지금은 실존의 문제를 고민하는 나이 이기에 그 시절의 흔적은 지금과는 다른 흐릿한 미래에 대한 기대감에 가득 찬 흔적들이었을 것이기에 지금과는 분명 다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더 이상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는 것은 그 흐릿한 미래가 무엇인지를 이제 알게 된 지금이여서 이지는 않을까? 

 

20대 시절 그 규정되지 않은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기대감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이끄는 에너지였다면 지금은 현실적이고 상세히 규정된 현실 세계에 대한 실존에 대한 고민이 더 크기에 그 시절과 동일한 에너지가 없다고 해서 그것을 상실의 개념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과거의 흔적들은 잘 간직한체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 대해 흔적을 잘 남겨야겠습니다. 20대 시절 흐릿한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일상의 삶에 다양한 흔적을 남겼던 그 에너지가 이제는 40대 시절 뚜렷한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흔적으로 바뀌어 내 삶의 기록들이 더 풍성해졌으면 좋겠습니다. 

 

Monday, November 16, 2020 @ Lleida, Sp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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