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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다섯 (in Spain)

#120> 공간 (空間)

by 엘트리고 2020.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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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July 10, 2020

 

어떤 글에서 과거의 누군가와 ‘같은 시대에 살지는 않았지만 같은 공간에서는 살았다’는 말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같은 공간에 살고 있습니다. 이 공간에서 각자의 속도대로 살아가고 있으며 각자가 느끼는 시간의 영역 속에서 일상을 살아갑니다. 훗날 역사책에서나 나올법한 일들이 벌어지면 ‘우리는 역사의 현장 속에 살고 있다’는 말들을 종종 듣습니다. 내가 공유하는 지금 이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지금의 일들은 훗날 시간이 지나 또 다른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는 과거 어느 시점에서의 공간에서 벌어진 일들을 역사라는 이름으로 책이나 각종 미디어를 통해 접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내가 속한 이 공간에서 어떤 흔적을 남기고 있을까?

 

오래된 옛날 사진을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진 속 풍경을 보는 것도 좋지만 그 사진속에 나오는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는 편입니다. 그들의 행동, 포즈, 표정 등 1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형성된 그들의 모습이 영원한 흔적이 되어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소개된다고 생각하면 그 짧고 짧은 1초의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 사진 속의 천진난만한 꼬마의 모습이 할아버지 세대 혹은 아버지 세대의 어린 모습인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지금 찍는 한 장의 사진이 훗날 누군가에겐 지금 내가 느끼는 그 시간의 무게를 느끼게 해 줄 한 장의 사진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사는 공간에 흔적을 남기는 방법이 유명세나 권력을 쟁취하는 방법이 전부가 아닐 것입니다. 내가 있는 지금의 시간과 장소에서 내 역활에 최선을 다하는 방법으로 내게 선물로 주어진 내 삶에 대해 매일 존경을 표시하는 것이 내 삶에 흔적을 남기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내가 소비하는 매일의 시간이 그저 소비되고 사라지는 일회용품 같은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소비하는 나의 시간은 내가 있는 이 공간에서 나만의 흔적을 남기고 그래서 훗날 다른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겐 기억에 남는 한 장의 사진 같은 그런 오늘의 축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Friday, July 10, 2020 @ Lleida, Sp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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