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une 1, 2017
얼마 전 지금 내가 가지고 있고 또 관리하고 있는 어떤 종류의 노트도 한 권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일기를 매일 쓰면서 늘 가졌던 고민 중 하나는 나중에 이 쌓여가는 일기장을 어떻게 처리할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과거 노트에 약간 편집증적 증상이 있던 시절이 있었는데 무엇이든 깔끔하게 노트에 정리되어야 했고 또 작은 오타 하나도 인정할 수 없어 전체 페이지를 찢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 일상이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아마도 노트에 깔끔하게 정리되면 그 지식이 자연스럽게 내게 흡수될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되돌아보니 그 지식이 자연스럽게 내게 흡수될 리 만무하고, 또 나중에라도 그 노트에 담긴 내용을 찾아보기에는 시간이 지나 어디에 두었는지 찾기 힘들게 돼버렸고, 때로는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그것들이 가끔은 불편한 짐이 되어버려 내가 자발적으로 버리는 경우도 발생하게 됩니다.
이런 노트에 대한 편집증과 그 기간의 유효성에 대한 미련은 어느 순간 부터 내가 노트를 사용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멀리하게 만들었고 대신 언제든지 오타를 수정할 수 있고 또 잃어버릴 염려도 또 내가 자발적으로 버릴 염려도 없는 웹으로 이동하게 만들었습니다. 현재 나의 모든 데이터, 자료, 심지어 필기한 내용은 모두 웹 클라우드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이는 내가 더 이상 어떤 노트를 소유할 필요 없이 웹이라는 공간을 대여하여 그곳에 모두 저장하고 내가 필요할 때 찾아보는 가상의 공간을 만든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디지털 노매드(nomad) 현상이라고 어떤 책에서는 명시합니다. 위의 제 노트의 경우는 이런 현상의 한 예시일 뿐 현재 우리의 일상에서는 이런 디지털 노매드 현상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우리의 삶은 점점 클라우드화 되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클라우드화의 핵심은 소유에서 벗어나서 ‘공유나 대여의 일반화’로 정의될 것입니다.
현재의 내 모습을 생각해 봐도 과거에 비해 소유에 대한 애착이 그닥 크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내 주위에 많은 물건들이 있는 것이 그다지 맘에 들지 않습니다. 불필요한 물건들은 어서 빨리 처리해 버리고 싶고 필요한 물건들만 내 주변에 두고 싶은 맘이 점점 커져 가는 것 같습니다. 과거 이런 비움의 자세를 누군가는 무소유의 철학적 자세로 정의한 것에 반해 오늘날 이런 비움의 행동은 무소유와는 약간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소유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정말 필요한 것 그리고 그것들이 나의 삶에 불편을 가져오지 않는 간편한 것으로 소유하고 싶고 내게 불편함을 조금이나마 가져오면 당장 치워 버리고 싶은 약간은 인스턴트식 소유에 대한 열망 같아 보입니다. 그래서 소유하기보다는 대여하고 불필요함을 느끼면 어떤 감정적 애착 없이 그냥 치워버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클라우드화가 단지 물건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찌 보면 내 삶의 전반에 있어 점점 확대되어 가고 있지는 않은가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됩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으나 어느 순간부터 ‘베프’를 만드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친밀한 사람이 새로이 생기게 되어 그 관계성에 집중해야 하고 또 내 시간, 에너지를 투자해야 하는 것이 약간은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아마 나에게 있어서는 인간관계도 점점 클라우드화 되어 그 관계성을 소유하기보단 그냥 그 상황에 맞게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고 어느 순간 헤어짐이 찾아오면 그냥 어떤 감정적 애착도 없이 떠나보내는 ‘클라우드화 된 관계성’ 이 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노트를 무척이나 소유하고 싶지만 내게 찾아올 불편함 때문에 모두 클라우드화 시키는 것처럼 친밀한 관계성을 원하지만 그 관계성에 투입되어야 할 내 시간과 에너지가 싫어서 마치 인간관계도 대여하고 있는 느낌이 드는 요즘입니다.
이런 클라우드화에서 조금은 벗어나 소유의 소중함을 느끼는 삶으로 돌아가야 겠습니다. 얼마 전 노트 한 권을 구매해서 과거처럼 무엇인가를 열심히 적고 있습니다. 내가 열심히 이 노트에 정리한 것들이 훗날 시간이 지나 잃어버릴지언정 현재의 이 소유를 즐기고 싶은 것처럼 내 삶에서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에 대해서 그 관계성을 소유하고 소중히 여기는 그런 비 클라우드화 된 관계성을 이제부터 라도 추구해야겠습니다.
Thursday, June 1, 2017 @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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