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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하나 (in Korea)

#97> 거리

by 엘트리고 2020.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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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May 6, 2017

 

대학생 때 늘 걷던 시내 거리를 걸었습니다. 16년 전 군입대하기 전 10대 시절 감성이 여전히 남아 있었을 때 친구들과 걸으며 얘기를 나누던 그 거리가 기억납니다. 무더웠던 여름, 소나기가 흠뻑 내리던 날 작은 과일 카페에 들어가 비가 멈출 때까지 턱을 괴고 하염없이 자리에 앉아 창밖을 쳐다보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짝사랑하던 사람에게 건네주지도 못할 편지를 하염없이 쓰던 기억도 납니다. 오늘은 이미 다른 건물로 변해버린 그 과일 카페 앞을 지나면서 잊고 있었던 기억들을 끄집어낼 수 있는 날입니다.

 

16년전 미래라는 곳에 화살을 쏘고 그 화살을 줍기 위해 앞으로 걸어 나가 그 화살을 주운 후 걸어왔던 그 뒤를 돌아보는 느낌이 드는 하루입니다. 새로운 화살이 떨어진 이 거리는 처음 화살을 쏘았던 그 당시 거리와는 많은 것이 변해있습니다. 당시 내 시선에 들어왔던 풍경들은 시간이 지나 새로운 관심사를 반영하듯 현재 내 시선이 향하는 새로운 풍경들로 바뀌어져 있습니다.

 

20대 초반 대학생 시절 그 당시에는 저렴한 식당, 이쁜 카페 그리고 PC방들이 내 눈에 들어오던 대부분의 풍경들이었다면 이제는 그런 것들은 관심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고 도심지에 위치한 아파트 건물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와 그 건물의 매물가는 어느 정도 일까 생각하며 유심히 쳐다보게 되니 같은 거리일지라도 내가 바라보는 곳의 시선이 바뀌어 그 거리 풍경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같은 거리, 같은 공간에 있어도 이렇게 서로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 경우 ‘우리는 같은 곳에 있었다’ 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같은 거리에 서서 훗날 과거를 회상할 때 누군가는 감성이 충만한 채로 걸었던 아름다웠던 풍경만을 기억할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삶의 팍팍함을 느끼며 자조 섞인 한숨을 내쉰 거리로 기억될 테니 말입니다.

 

오늘 걸었던 이 거리는 아름다웠던 내 20대의 추억만이 남아있는 거리였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그냥 무작정 턱을 괴고 창밖을 보며 앉아 있을수 있었던 여유로움과 짝사랑하던 사람에게 건네지도 못할 정성 어린 편지를 곱게 써내려 가던 그 순수했던 감성, 그리고 각박한 현실보다는 순간의 아름다움에 반해 하염없이 바라보던 그 거리 풍경의 기억만이 늘 남아있는 그런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Saturday, May 6, 2017 @ Daegu,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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