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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넷 (in Netherlands)

91> 명작

by 엘트리고 2020.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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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December 21, 2016

 

얼마 전 컴퓨터 폴더에서 8년 전쯤 작성한 개인 이력서 (CV)를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아마 당시 대학을 막 졸업하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기 위해 만든 이력서일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정성을 기울였는지 가늠하기가 힘들 만큼 시간을 투자하고 만들었던 내 첫 CV 임에는 틀림없습니다. 8년이 지나 다시 그 CV를 꺼내보니 나도 모르는 탄식과 얼굴의 화끈거림이 느껴집니다. 어떻게 이런 형편없는 CV를 만들었고 또 그것을 당당하게 내가 가고자 하는 곳에 제출했는지 의문일 정도의 형편없이 수준 낮은 CV입니다.

 

과거 회사 신입사원 연수 시절 들었던 강연이 생각납니다. 나이 지긋한 회사 내 어느 분이 강사로 오셔서 신입사원들에게 강의를 해 주시던 중 초등학생이 전봇대에 붙인 강아지 실종 포스터 사진을 보여주셨습니다. 한 초등학생이 본인이 아끼던 강아지를 잃어버린 상실감에 도화지에 크레용으로 강아지 그림을 그려놓고 ‘꼭 찾아주세요’라고 적었둔 전단지입니다. 강연장에 모든 사람들이 그 초등학생의 엉뚱함에 웃고 있을 때 ‘이 자료에 대해서 분석해 봅시다. 무엇이 빠져있고 무엇이 부족할까요?’ 라며 강사분께서 청중들에게 물어봅니다. ‘연락처가 안 적혀있습니다’, ‘사례금 내용이 없습니다’, ‘잃어버린 장소가 표기되어 있지 않습니다’ 등등 많은 의견들이 쏟아집니다.

 

강사분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볼 때는 이런 수많은 헛점과 부족함이 많은 포스터지만 이 초등학생에게는 자신이 할수 있는 모든 노력은 물론 간절함이 묻어 나오는 포스터입니다. 앞으로 직장생활을 하시면서 본인이 만든 자료나 보고서들이 자신들에게는 많은 시간이 투자되고 혹은 열정이 묻어나오는 자료라 여길수 있겠으나 직장 상사가 볼때는 이 초등학생의 포스터와 같은 자료일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을 늘 염두하시고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딛기 바랍니다’라고 조언해 주십니다.

 

8년 전 당시 간절함으로 만들었고 또 이것으로 내 경쟁력이 높게 평가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그 CV는 지금 다시 보니 마치 그 초등학생의 포스터와 같은 결과물임을 순간 깨닫게 됩니다. 당시 대학 졸업 후 향후 진로를 준비하던 상황임을 감안해볼 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을 것은 분명한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결과물은 엉뚱함이 느껴지는 초등학생의 포스터와 같은 것임에 실소를 금할 수 없게 됩니다.

 

과거 군 제대 후 누군가로부터 ‘너만의 명작을 그려라’라는 책 한 권을 선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다양한 이야기와 명언들로 대학시절 책에 밑줄 그어가며 읽었던 책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내 삶에 다양한 명작 (masterpiece)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생각하는 그 명작이라는 것은 단순한 노력으로 만들어지고 또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찌 보면 평생 만들어나가야 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날 명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과거 CV처럼 훗날 졸작이 될 수도 있고 지금 졸작이라 실망하는 것이 노력을 통해 훗날 내 삶의 명작이 될수도 있기에 아마도 나만의 명작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생각이 드는 하루입니다.

Make each day your masterpiece: ‘너만의 명작을 그려라’의 영문 제목

 

Wednesday, December 21, 2016 @ Wageningen, Netherl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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