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각 넷 (in Netherlands)

#56> 인지

by 엘트리고 2020. 8. 1.
반응형

Sunday, July 26, 2015

 

이번 주 학회가 있어서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를 방문했었습니다. 학회 중 제가 속한 전공 세션에서 몇몇의 발표자들이 자신의 연구활동들을 소개하고 또 이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 학회를 통해 내가 가야 될 방향이 어디 쪽일까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스트라스부르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아슬아슬하게 경유시간이 정해져 있어 바쁘게 움직입니다. 마지막 기차를 타고 노트북에 이어폰을 연결해 음악을 듣고 있는 도중 순간 한 기차역에 너무 오래 정차한다는 생각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기차에 앉아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차 승무원이 다가와 앞에 대기해 있는 기차를 왜 안탔느냐는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가방을 잽싸게 들고 기차에서 내리고 보니 앞 기차는 이미 떠난 후입니다. 아마 기차에 문제가 있어 앞에 대기해 있는 기차로 갈아타라는 공지를 했는데 혼자 이어폰을 꼽고 있어 전혀 듣지 못한 모양입니다. 나뿐만 아니라 3~4명 정도가 더 기차에서 내립니다. 아마 다 비슷한 이유로 꿋꿋하게 기차에 앉아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 기차가 집으로 가는 막차라 오늘은 어디인지도 모르는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야 합니다. 일단 이곳이 어디인지라도 알고 싶어 역 밖으로 나가봅니다. 역 곳곳에 독일어로 Koln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사실 유럽 도시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기 때문에 여기가 어디인지 도통 감이 오지 않습니다. 역 앞에 큰 대성당이 보이길래 일단 사진을 여러 장 찍어봅니다. 스타벅스에 들어가 와이파이를 잡고 이곳이 어디인지를 검색해봅니다. 이곳은 독일 쾰른 (Köln) 이라는 도시입니다. 그리고 인터넷에 많은 여행후기가 올라와 있는 것을 봐서는 무척이나 유명한 도시인 것 같아 보입니다. 타의에 의해서지만 이 유명한 도시에 와서는 ‘여기가 어디지?’ 하는 내 모습이 오늘따라 무척이나 더 즉흥적이게 보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여기서 말하는 안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지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학회기간 도중 한 교수님과 도시를 둘러볼 기회가 생겼는데 그 교수님 말씀에 따르면 이곳은 ‘꽃보다 할아버지’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촬영을 한 도시라고 합니다. 그분은 이곳을 방문하기 전 그 프로그램을 다시 꼼꼼히 보셨다고 합니다. 같이 길을 걷다가 식수대가 보이자 ‘이곳에서 이서진이 물을 마셨잖아요~’라고 하십니다. 나에게는 그냥 평범한 식수대가 그분에게는 유명한 사람이 물을 마신 식수대로 인지하고 계신 것입니다. 문득 같은 시간에 같은 거리를 걸어도 내게 보이는 것보다 그 교수님께 보이는 것이 훨씬 더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게는 마냥 이쁜 거리도 미리 공부를 해오신 그분에게는 더 많은 역사의 자취가 보이는 장소일 것 같아 부럽기도 합니다.

 

여기가 어디지 하며 생각없이 찍었던 사진이 인터넷에는 쾰른 대성당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여행후기가 그러하듯 그것의 역사 그리고 현재의 가치에 대해서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들은 여행을 오기 전 여행지를 미리 공부하고 방문했기에 거기서 느끼는 시각은 기차에서 거의 졸다시피 하다 급하게 내려서 생각 없이 바라본 나의 시각과는 전혀 다른 큰 감동이 있을 듯합니다. 그들은 이곳이 어디인지 인지하고 있고 나는 전혀 인지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학회 기간 중 제 전공분야의 주제를 발표하는 박사 후 과정 발표자의 발표를 듣고 있으면 직장생활에서 현업을 경험한 나로서는 ‘이걸 왜 하지?’라는 생각만 계속 듭니다. 식물의 개화기를 조절할 수 있는 유전자를 연구한다는 분에게 현장에서 실제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을 설명하고 적용 가능한지를 물으면 안 될 거라 하십니다. 식물의 빛 신호를 연구하시는 분에게 동일한 설명을 하고 질문을 드려도 그거와는 관련 없다 하십니다. 나는 실제성을 인지하고 있고 그들은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의 실제 적용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지 못해 보입니다. 전공 발표 좌장이셨던 한 교수님이 끝나고 저에게 오셔서 제 질문에서 향후 본인 연구에 대한 영감을 많이 얻었다고 하십니다. 이 분은 학업과 현업의 큰 괴리를 인지하고 계시기에 이런 말씀을 해주신 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듭니다. 죄송하게도 나머지 발표하신 분들을 그 큰 괴리를 인지하고 있지 못한 체 마치 아무런 생각 없이 학회장 주변 거리를 걷고 (마지막 날 알게 된 건데 그 주변 거리가 쁘띠 프랑스라고 아주 유명한 관광지라고 합니다) 유명한 도시에 와서도 여기가 어디지 라고 반문하는 나 자신의 모습과 오버랩됩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늘 인지하며 행동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내 생각과 방향이 현실과 큰 괴리가 있을 때 누군가가 던진 그 물음에 대해서 더 치열하게 고민하여 그 갭을 줄여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알지도 못하는 도시에 서 있을 때 '여기가 어디지?' 라고 묻는게 아니라 '내가 가는 방향의 어느 한 중간쯤' 이다 라는 최소한의 인지로 다음 방향을 다시 설정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Sunday, July 26, 2015 @ Strasbourg, France

 

반응형

'생각 넷 (in Netherlands)' 카테고리의 다른 글

#62> 습득  (0) 2020.08.03
#58> 해석  (0) 2020.08.01
#53> 편집  (0) 2020.08.01
#51> 도구  (0) 2020.07.31
#49> 의미부여  (0) 2020.07.3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