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February 14, 2016
저번 주 재시험을 쳤습니다. 수업을 다 이수하고 시험을 친 후 5.5 점 이하를 맞으면 해당 과목에 대해서 과락을 받게 됩니다. 상대적 평가는 하나도 없이 그냥 변별력이 높은 시험이면 90%가 과락을 할 수도 있고 운 좋게 과락을 면한 나머지 10%의 점수도 그다지 높지 않은 채로 마무리되는... 어찌 보면 사회주의 같은 유럽
국가에서 시험제도는 강한 자만 살아남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 같아 보입니다. 이런 제도 속에 머물다 보니 학부시절 과락 하나 없이 열심히 살아온, 교육시스템이 다른 국가에서 온 학생들이 그때보다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했음에도 fail이라는 결과를 맞이했을 때 겪는 트라우마는 생각보다 무척이나 큰 것 같아 보입니다. 1년에 1~2명씩 압박감 혹은 좌절감에 의해 자살로 젊은 생을 마감하는 학생들이 계속 생기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에게 있어 극단의 결과를 요구할 때 늘 극단의 선택을 가져오게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자본주의 사회 혹은 경쟁이 치열한 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일수록 그 극단의 결과에 심하게 노출된체 살아갑니다. 예전 직장생활 중 영업회의 때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당시 년간 매출 목표가 시간이 갈수록 달성하기 어렵게 되자 어느 순간 갑자기 ‘비상경영체제’라고 회사에서 선포를 한 후 본사는 물론 지점 직원들을 무척이나 압박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점 직원들이 본사에 올라와 영업회의를 할 때 CEO가 마지막에 하는 말이 ‘이번 달 목표 달성을 못하면 영업사원 한 명을 퇴출하겠다’라고 협박성 멘트를 날리는 것으로 회의는 마무리됩니다. 당시 회의 모습을 보면서 시장이 변화하고 트렌드가 바뀌는 그 상황은 인지하지 못한 체 단기적 성과에 집착한 체 극단적 결과만 요구하는 전문경영인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비 전문가 같아 보였던 기억이 납니다. 영업사원들은 그런 극단적 상황을 더 크게 느꼈던지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몇 명이 먼저 퇴사해버렸던 걸로 기억합니다.
시험에 실패한 학생들은 쓰라린 마음을 가다듬고 재시험 이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에서 신자유주의 같은 시험에 있어서 무척이나 건강한 사회의 제도가 보입니다. 재시험의 정의는 ‘당신은 해당 수업을 다 이수하였고 시험을 쳤으나 시험에 실패했으니 수업을 다시 들을 필요는 없고 그냥 시험만 다시 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재시험은 정해진 기간과 시간 안에서 1회가 아니라 본인이 합격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이곳의 시험제도는 ‘성적’ 자체에 무게를 두는 것이 아니라 해당 과목이 요구하는 커리큘럼을 이해하고 이수하는 최종 결과에 무게를 두고 있는 듯합니다. 그렇기에 이번에 내가 부족했다면 좀 더 시간을 가지고 공부해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계속 열어주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예전 미국 실리콘밸리는 성공의 요람이 아닌 실패의 요람이라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습니다. 그곳의 사람들은 대부분 실패를 계속 경험하고 있고 그 와중에 한 두 명이 성공을 해서 큰 기업으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실리콘밸리의 가장 큰 장점은 성공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실패한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기회를 주는 것에 있다고 합니다.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이 그냥 낙담한 체 포기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계속해서 기회를 주고 다시 심기일전해서 도전하게 만드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처럼 느껴집니다. 실패한 사람이 다시 기회를 갖지 못하는 사회라면 그것이야 말로 극단적 결과와 극단적 선택을 요구하는 벼랑 끝 사회 같아 보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결과만 보게 되면 기회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이 단순한 시험성적이든 회사의 매출목표든 단순히 ‘숫자’ 에만 집중하게 될 때 우리는 그 숫자의 결과에만 매몰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망각한 체 그 숫자보다 높고 낮음에 의해서만 성공과 실패를 규정할 때 우리는 극단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매출 목표가 달성이 안된다고 영업직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신상필벌을 말하기 이전에 시장이 어떻게 바뀌고 있고 어떤 트렌드를 우리가 놓치고 있는지 혹은 우리에게는 어떤 기회가 남아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CEO의 사전적 의미에 더 근접해 보입니다.
해당 과목을 합격하는 점수 그 자체보다는 해당 과목이 요구하는 커리큘럼을 이해하고 다른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성취의 과정이 단지 표면상의 숫자 하나보다는 훨씬 더 가치 있어 보입니다. 숫자의 높고 낮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한 또 다른 ‘기회’를 중시할 때 닫혔던 문 옆에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문이 열리는 경험을 하는 기대감을 가져볼 수 있게 합니다.
다시 준비한 재시험을 통해 몇년간 이해하기 힘들었던 몇몇 통계 개념을 제대로 이해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예전에 난제(難題)로 남겨뒀던 문제들이 쉽게 해결됨을 깨닫게 됩니다.
다시 기회가 있다는 것은 ‘실패에 대한 학습’과 ‘마음의 여유’가 만나 어렵게 느껴졌던 것들을 쉽게 만드는 힘이 있어 보입니다.
기업 혹은 더 나아가 우리의 사회가 기회를 주는 것에 인색함이 없는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숫자 자체에만 얽매여 숫자의 높고 낮음으로 성공과 실패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숫자가 나올 수밖에 없는 그 과정을 인식하고 각자의 부족함을 채워나가는 기회가 많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어서도 그런 기회를 자신에게 계속해서 줄 수 있는 여유 있는 실패의 학습자가 되어야겠습니다.
Sunday, February 14, 2016 @ Wageningen, Netherl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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