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한번도 내려가본적 없는 계단의 비극
Sunday, August 30, 2020
과거 고든 맥도널드의 저서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 (Ordering Your Private World)'이라는 책에 나오는 '한 번도 읽혀지지 않은 책의 비극'이라는 챕터가 생각이 나서 제목을 이렇게 한번 정해 보았습니다. 당시 그 챕터에서 말하길 지적으로 성장하지 않는 사람은 한 번도 펼쳐져 본적 없이 읽혀지지 않은 책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즉, 지속적인 지적 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건물에서 한층만 내려가면 조용히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여러 개의 책상이 비치되어 있고 또 담소를 나눌 수 있게 소파와 탁자도 여러 개 놓여 있습니다. 작년 10월쯤 주말에 집중해서 해야 될 일이 있어서 잠시 이 곳으로 내려와서 일을 하다가, 2년 가까이 이곳에 살면서 통로 계단을 통해 이 공간으로 내려와 본 적이 오늘이 처음이었음을 알게 되고 소스라치게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일상에서 매일 이 건물을 오가면서 입구 아래 유리창으로 보이는 이 공간을 매일 보아 왔으면서도 내 마음을 움직여 이 곳으로 내려가기 까지가 2년이 걸린 것입니다.
평일날은 출근을 해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예외로 두더라도 주말 같은 경우에는 잠깐 시간을 내서 이곳에 내려와 잠시나마 무엇인가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주말엔 집에서 쉬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매번 집안에서 빈둥거리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강박관념은 과거 직장생활을 할 때 자의 반 타의 반 매주 주말에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하며 내 에너지를 소비하던 시절에 대한 보상심리에 기반합니다. 당시 누군가가 나에게 휴식이라는 것은 일을 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고 주말에 일을 하는 건 자기만족 같아 보이지만 결국 자신을 갉아먹고 있는 행위라고 조언해 줬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그 사람의 말처럼 어느 순간 burn-out 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 이후로 주말에 무언가를 하는 것이 무척이나 꺼려집니다. 그냥 주말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쉬는 것을 쉼으로 생각하고 살아왔으나 당시 고든 맥도널드 책의 챕터 내용처럼 '한 번도 내려가 본 적 없는 계단의 비극' 이 내 앞에 펼쳐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10개월이 지났습니다. 다시 주말에 집중해서 해야 될 일이 있어 오늘 그 공간으로 다시 내려가 봅니다. 그리고 지난 10개월 동안 내 삶에서 '한 번도 내려가 본 적 없는 계단의 비극' 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생각이 드는 하루입니다. 이 비극은 전혀 지적으로 성장하지 않고 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나 자신의 게으름에 대한 자책일 것입니다.
쉼에도 품격이 있습니다.
아무런 생각없이 시간을 흘러 보내는 무계획적인 쉼이 있는 반면, 조금이나마 계획을 첨가해서 자기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쉼도 있을 것입니다. Burn-out을 경험한 사람은 무계획적인 쉼을 추구하며 자신의 에너지를 회복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내 에너지가 회복되었다고 느껴질 경우 조금은 자기 만족도를 높이는 쉼을 추구해 나가는 것도 필요해 보입니다. 그 자기 만족도를 높이는 쉼의 첫 번째 방향성은 지적 성장을 추구하는 쉼의 자세는 아닐런지요?
주말에 시간이 날 때마다 가끔 계단을 통해 이 공간으로 내려와야겠습니다. 비록 그것이 뉴스 기사를 읽는 것이든,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든 아니면 내 논문을 쓰는 것이든 간에 일단 이곳으로 내려와 지적 성장을 추구하는 쉼의 자세를 추구해 나가야겠습니다. 그래서 이 공간은 '한 번도 내려가 본 적 없는 계단의 비극' 이 아니라 '매일 찾아가는 지적 성장의 계단' 이 되길 소망해 봅니다.
Sunday, August 30, 2020 @ Lleida, Spa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