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트리고 2020. 8. 3.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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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January 1, 2016

 

얼마 전 기차에서 가방을 소매치기당했습니다. 가방 안에 노트북이 들어있었는데 갑자기 늘 사용하던 노트북이 갑자기 사라져서 무척이나 당황했었습니다. 노트북에는 각종 자료, 사진, 데이터 등 지난 몇 년간 내 삶의 모든 흔적이 축적되어 있었는데 그 흔적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려 그 충격이 무척이나 심했던 것 같습니다.

 

무엇인가를 소중히 여길수록 그것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공포도 더 커지는 것처럼 어느 순간부터 자료 분실에 대한 걱정이 컸던지 모든 자료는 구글이나 마이크로 소프트 드라이브에 저장하고 늘 동기화를 시켜온 덕분에 사실 잃어버린 것은 데이터가 아닌 노트북 기계뿐이지만 몇몇 자료는 동기화가 되지 않아 잃어버린 자료가 계속 발견됩니다. 사실 가장 중요한 데이터 하나를 잃어버려서 일주일 동안 노력해서 조사한 실험 데이터가 사라져서 지금 다시 데이터를 만들고 있습니다.

 

1년 전 이맘때쯤 홍대 어느 카페 도서토론 모임에서 지난 1년의 삶을 되돌아보던 시간이 기억납니다. 당시 ‘비움’이라는 단어를 얘기하며

 

‘비운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잃어버린 것으로만 여길 것 같다’

 

고 얘기했었습니다. 비움과 상실 모두 ‘나에게 지금 없는 것’으로 결과는 같습니다. 하지만 전자는 내가 주체적으로 받아들이는 능동적인 마음이고 후자는 내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자세인 것 같습니다. ‘영원한 것은 어디에도 없으며, 모든 것을 언제까지나 소유하고 있으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생수업의 문구가 생각납니다. 아마 클라우드로 데이터를 저장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나는 기기는 영원히 소유할 수 없어도 데이터는 언제나 소유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잃어버린 노트북보다는 데이터에 더 큰 미련이 생기는 듯합니다.

 

비운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잃어버린 것으로만 여길 것 같다던 1년 전 말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다시 비워내고 시작하는 일상이 그다지 나쁘게만은 다가오지 않는 듯합니다. 비록 축적된 삶의 흔적들은 많이 잃었지만 그동안 잊고 있었던 ‘비움’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해보고 삶에 실천해 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잃어버린 것에서 비움을 생각해 볼수 있으니 인생수업 책에서 얘기하는 상실과 이별의 수업을 들은 것 같은 하루입니다.

 

Friday, January 1, 2016 @Wageningen, Netherl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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