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트리고 2020. 7. 31.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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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May 23, 2015

 

얼마 전 식물의 잎에 병원균을 접종하는 실험을 하였습니다. 두 가지 다른 병원균을 다른 플라스틱 튜브에 옮겨 혼합을 하고 주사기로 잎에 접종하는 것입니다. 두 병원균을 혼합해서 옆에 파트너에게 전달하고 다른 작업을 하려던 중 그 파트너가 말하기를 용액이 적어서 주사기 끝이 플라스틱 튜브 안의 용액까지 닿지 않는다고 합니다. 순간 더 큰 주사기를 어디서 찾지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무렵 그 파트너는 좀 더 작은 플라스틱 튜브를 가져와 용액을 옮긴 후 용액을 주사기로 가져오기 시작합니다.

 

참 단순한 문제인데 가끔 그 문제를 그렇게 단순하게 해결하기가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순간 나는 현상(situation)과 도구(method)의 문제에 있어서 도구에만 집착하여 문제의 본질인 현상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문제의 본질은 플라스틱 튜브 안의 용액을 주사기로 옮기지 못하는 것인데 현상을 이해한다면 좀 더 작은 플라스틱 튜브를 사용하면 되는 문제를 도구에만 집착하여 주사기 크기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전 직장생활을 할때 다른 회사로 이직하여 업무를 하던 중 직장 상사에게 업무의 어려움을 하소연한 적이 있습니다. 현재 사용하는 회사 전산시스템(ERP) 너무 후져서 원하는 데이터 작성이 어렵다고 했습니다. 전 회사의 ERP는 코드 조합 몇 개를 이용해서 원하는 이익률을 바로 뽑아낼 수 있었는데 현재 시스템으로는 바로 그 데이터를 뽑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말하기를 업무에 있어서 ERP는 하나의 도구일 뿐인데 너는 그 한 가지 도구가 없다고 해서 일이 안된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며 너의 머릿속에 이익률이라는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면 ERP가 아니라 엑셀 파일로도 충분히 그 자료들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끔 도구에만 너무 집착해서 현상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는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예전 일본의 유명 컨설턴트 사토 료라는 분의 저서 ‘원점에 서다(back to the basics)’라는 책이 생각납니다. 이 책에서 한 셀러리맨의 잊혀진 목적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한 셀러리맨이 열심히 저축을 해서 원하는 차를 구매한 후 차를 가지고 출근을 했더니 늘 주차장에 차가 가득 차서 주차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자 꼭두새벽에 출근을 해서 주차를 하고 시간이 너무 남아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서 아침을 먹고 다시 출근을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차를 산 목적은 좀 더 효율적인 출근을 위한 것인데 어느 순간 그 본질이 주차로 왜곡돼어 그것이 목적이 되 버린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 셀러리맨에게 주차가 목적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도구적 인간이 되어가는 것이 무척이나 싫습니다. 목적 혹은 본질에 있어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수많을 텐데 단 한가지 도구에만 집착하는 것이 나의 상상력을 너무 쉽게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 같아 보입니다. 과거 군 제대 후 복학해서 처음 맞이한 수업 과제가 생각납니다. 당시 과제는 교과서 한 챕터를 요약해서 제출하는 것이었는데 당시 무료하게 워드 타이핑을 치면서 과제를 준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과제 제출하던 날 교수님이 과제를 살펴보시면서 한 학생의 과제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본인이 공부하면서 노트에 잘 정리된 내용을 복사하여 과제로 제출한 것입니다. 나는 무료하게 타이핑을 치면서 요약하는 과제를 하고 또다시 시간을 투자해서 노트로 정리해가며 공부할 때 그는 노트 정리로 요약해서 공부를 마치고 그것을 바로 과제로 제출한 것입니다. 당시 그 교수님이 참 잘 정리된 과제라며 칭찬하던 것에 무척이나 속상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속상함은 ‘왜 나는 그런 단순한 생각을 할 수 없는가’ 였습니다. 요약의 첫 번째 목적은 학습이며 그 학습을 위해 과제라는 도구가 사용됩니다. 나는 어느 순간 그 도구에만 집착하여 왜 그 본질을 잊은 것입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체 도구에만 집착하는 나를 보게 됩니다. 도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많은 방법 중에 하나일 뿐일 텐데 아직 그것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내가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철칙으로 믿고 있는 행동들을 유심히 봐야 겠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방법들이 공존하는 것을 간과한 체 그냥 한 가지 생각과 방법만을 고수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 본질에 집중해 늘 사용하던 한 가지 도구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원래 하지 않던 새로운 방법을 찾아 다양한 시도를 하는 그런 창의적인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Saturday, May 23, 2015 @ Wageningen, Netherl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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