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넷 (in Netherlands)

#42> 적자생존

엘트리고 2020. 7. 31.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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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March 9, 2015

 

회사 신입사원 시절 수많은 회의 내용들이 오고 가는 회의시간에 주로 맡은 업무는 회의록 작성입니다. 회의록을 작성하는 사람은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하는 말, 의견, 결론 등을 실시간으로 타이핑 치는 무료한 작업을 하게 됩니다. 신입사원 시절 그들이 내뱉는 말들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체 그냥 타이핑 치기만 바빴던 때가 기억납니다. 그리고 회의가 끝난 후 회의록을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이메일로 공지하면 늘 한두 명에게는 ‘내가 언제 이런 말 했냐”라는 핀잔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회의에 참석해 무언가를 기록할때 핵심 내용이 있습니다. 회사 용어로 ‘의사결정사항’이라고 합니다. 상위직급에 있는 누군가가 직원들이 안건을 정리해서 보고한 내용에 대해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회의록에 그 핵심사항이 정리되어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핵심사항을 놓치고 불필요한 사족(蛇足)만 나열한 회의록은 그다지 쓸모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런 의사결정사항은 회사에서만 통용되는 단어는 아닌듯 합니다. 전자제품을 고를 때 그 제품을 설명하는 단어 중 내가 필요로 하는 기능이 적혀있는 그 문구 하나에 구매를 결정하게 되면 그 문구는 내게 있어 그 제품을 구매토록 하는 의사결정사항이 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연인에게 편지를 보냈을 때 특정 문구에 감동을 받으면 그 문구가 바로 그 연인들 간의 미래를 향한 의사결정사항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려운 개념, 공식을 설명하는 책을 보면서 도통 이해가 되지 않다가도 특정 한 문구를 보고 그 앞의 모든 설명들이 연결고리처럼 이어져 쉽게 이해하게 된 경험이 있습니다. 결국 그 핵심을 얼마나 잘 정리하느냐가 내 삶에서 미래를 향한 결정을 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적자생존 — 잘 적는자가 살아남는다.

 

오늘날은 무언가를 잘 기록하고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 엘리트가 되는 시대라고 합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가서 그 정리된 내용에 얼마나 ‘핵심’을 잘 요약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요소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과 아이디어, 혹은 이러지 말아야겠다, 아니면 꼭 이렇게 해야겠다 등등 수많은 것들이 머릿속을 오고 갈 때 얼마나 잘 캐치해서 잘 정리하느냐 그리고 그 내용에 ‘의사결정사항’이 포함돼 있어서 향후 내가 무언가를 결심하는데 도움을 주느냐의 문제일 듯합니다.

 

핵심은 그 의사결정사항에 타인의 시각이 아닌 나의 생각이 반영되어 있는가가 아닐까 합니다. 어려운 개념을 찾아보기 위해서 구글에 특정 단어를 쳐서 나오는 웹페이지의 2/3는 거의 같은 내용인 걸 얼마 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책에서 설명하는 그 어려움 개념을 쉽게 설명하는 곳을 찾기 위해 웹을 검색했는데 그 검색된 웹페이지의 2/3는 결국 자신이 이해하고 성찰한 내용은 없이 ctrl c+v 작업밖에는 이루어진 것이 없었습니다. 이것을 ‘개인 철학의 부재’라고 부른다면 너무 성급한 것일까 생각해 봅니다. 이런 웹페이지처럼 나 역시 타인이 말한 그 내용이 그냥 복사되어 내 생각처럼 표현되어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그렇게 정리된 내용에는 나의 ‘의사결정사항’이 없어 내 삶에 도약을 이루는 결정은 하지 못한 체 그냥 남들이 정해놓은 결정을 그저 따라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내 생각을 잘 적어나가야겠습니다. 남들이 적어놓은 생각이 아닌 나의 생각을 정리해 나가야 겠습니다. 비록 그 생각이 비록 타인의 객관화된 생각의 범위를 벗어나더라도 그래서 남들과 다른 길을 간다는 불안감이 찾아오더라도 그 생각들을 글로 잘 표현하고 ‘의사결정사항’을 잘 정리해두어야겠습니다. 그래서 결정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 그 핵심 키워드로 타인의 선택이 아닌 ‘나 고유의 선택’ 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래서 ctrl c+v 형 인간이 아닌 나의 생각과 스토리가 가득 차 있어 남들이 더 찾아보고 싶어 하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Monday, March 9, 2015 @ Wageningen, Netherl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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