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신발끈 메기
Thursday, January 1, 2009
새해 첫날입니다. 올해 새해 첫날은 다른 새해와는 달리 무계획으로 시작합니다. 해마다 새해 첫날이 되면 실행도 못할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혼자 만족해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올해 새해는 무계획으로 하루하루 맞이하는 환경에 최선을 다하고자 다짐해 봅니다.
그런 마음에서 인지 무작정 시내로 나가는 지하철에 몸을 싣습니다. 마음속에 사야 할 것들을 한두 가지 생각하며 사람들이 북적일 시내로 향합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사야 할지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이 오늘 하루는 사람이 많은 곳에 서서 북적거리는 하루를 보내고픈 모양입니다.
CD 플레이어를 사러 돌아다녀 봅니다. 최신 mp3, 아이팟 등이 판치는 요즘 CD 플레이어를 산다는 것이 왠지 뒤처져 보입니다. 그냥 옛날의 그런 멋이 그리워서, 또 집에 수북이 쌓인 음악 CD를 보며 다시 CD를 들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인가 봅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일까요? CD 플레이어를 파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 예전 너무나 익숙했던 것들 또 하나가 사라져 버린 모양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에 시내를 걷는데 자꾸 오른쪽 신발끈이 풀어집니다. 아무리 단단히 조여도 얼마 있다가 다시 풀어져 버립니다. 바쁘게 걷는데 신발끈이 자꾸 성가시게 하니 슬슬 짜증이 납니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빈 공간에 쭈그리고 앉아 두 겹, 세 겹 신발끈을 다시 조여매고 가던 길을 재촉합니다.
아무 계획 없이 나와서 그런지 CD 플레이어 이외에는 마땅히 살 것이 없어 보입니다. 친구 한 명에게 전화해 만나기로 하고 그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교보문고로 향합니다. 서점 안에는 발 디딜 틈이 없어 보입니다. 새해 첫날이라 그런지 수많은 사람들이 교보문고에 앉아 책을 읽고 있습니다. 아마 새해 첫날을 뜻깊게 보내고픈 모양입니다. 아는 사람들도 여럿이 먼발치에서 만났습니다. 아마도 3년 만에 다시 보는 사람들, 그 사람의 새해 평온을 “어색한 오랜만의 인사” 로 깨고 싶지 않아 먼발치에서만 볼뿐 그 자리를 돌아서 나옵니다.
이런... 다시 신발끈이 풀어져 버렸습니다. 교보문고 어느 빈 공간에 다시 쭈그리고 앉아 신발끈을 매기 시작합니다. 이제 자포자기했는지 어느 때처럼 급하게 매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신발끈을 조여 봅니다.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끈을 조이며 급하게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기보다는 가끔은 그 자리에 앉아 신발끈 한번 다시 조여 보는 여유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문득 해 봅니다.
잠시만 멈추면 되는 것을, 잠시만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 되는 것을, 지금껏 그걸 잘 못했네요
세상이 급하게 변한다 하면서도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불평을 쏟아 놓으면서도 그 속도와는 다르게 잠시 멈춰 있기보다는 그 속도에 맞추기 위해 바둥거리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봅니다. CD 플레이어가 분명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았을 텐데, 오늘 먼발치에서 봤던 그 사람들이 갑자기 어색한 사람들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지금껏 너무 급하게 걷기만 했을 뿐 잠시 여유 있게 앉아 있지를 못했네요. 잠시 앉아 신발끈 한번 동여맬 여유조차 없이 살았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비록 조금 늦는다 할지라도 조용히 앉았다 다시 일어나 여유 있게 가던 길을 걸어야겠습니다.
늦은 저녁 친구와 저녁을 먹고 길을 걷던 중 다시 신발끈이 풀어집니다. 조용히 그 자리에 앉아 신발끈을 다시 매어봅니다. 그리고 저만치 앞서간 친구를 큰 걸음으로 따라잡습니다. 그리고 다시 하던 얘기를 계속하며 가던 길을 걷습니다.
오늘 저녁 이런 작은 여유가 참 좋습니다.
Thursday, January 1, 2009 @ South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