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하나 (in Korea)

138> 슬픔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엘트리고 2022. 3. 1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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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March 18, 2022

얼마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작년 말 한국으로 귀국한뒤 자가격리를 끝내고 98세의 외할머니를 뵈러 갔었습니다. 당시 외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하셔서 같이 살던 외삼촌이 요양원으로 보낼려고 준비중이였는데 외할머니가 절대 요양원은 가지 않겠다고 해서 외가 친적들 간에 약간의 언쟁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외할머니를 2년만에 뵙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찌보면 외할머니와 이런 대화를 나누는게 마지막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곧 취업비자가 마무리 되면 캐나다로 들어가게 될텐데 바쁘게 연구를 하다보면 1-2년은 또 훌쩍지나갈 것이기에 그 생각은 더 명확해 졌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외갓집을 나오기 전 "외할머니 나랑 같이 사진 찍어요" 하며 핸드폰에 외할머니와 찍은 몇장의 사진을 남겨 두었습니다.

 

외갓집을 나서기전 외할머니가 문 입구에 까지 나와 집을 나서는 저를 바라보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평상시 외할머니는 거동이 힘드셔서 당신의 방안에서 외갓집을 나서는 나와 인사를 했었는데 유난히 그날 외할머니는 외갓집 문 입구까지 나와서 저를 배웅하셨습니다. 그날은 외할머니를 찾아뵈었던 과거 그 수많은 순간들 중 하나라는 생각보단 이제 점차 마지막 순간을 향해 간다는 생각에 외갓집을 나서다 문득 뒤를 돌아봤을때 문밖을 나서는 저를 멀리서 바라보시던 외할머니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왜 그날 굳이 외할머니는 힘들게 문 밖까지 나와서 집밖을 나서는 저를 바라보고 계셨을까요?

 

그리고 일주일 뒤 외할머니가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98세의 외할머니는 머리 수술후 아예 거동을 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말조차 제대로 할수없는 상태가 되셔서 병원에 계시다가 우리집으로 오셨습니다. 당신의 집으로 가셔야 했지만 이제 대소변 조차 혼자 가눌수 없고 사람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외할머니에 대해 같이 살던 며느리는 더 이상 집에 들일수 없다 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 며느리를 비난할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거의 40년 가까이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그 며느리에 대해 더 이상의 요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자식조차 돌보려 하지 않는 외할머니를 며느리에게 일방적으로 돌보라고 할 수는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2남 4녀를 두셨던 외할머니는 그렇게 아무곳에도 갈 곳이 없어 둘째 딸 집인 우리집으로 오시게 되셨습니다. 우리집에 오셔서도 외할머니는 평생 당신이 살아온 본인의 집에 가고 싶어 하셨습니다. 하지만 첫째 아들 내외는 더 이상 외할머니를 모실수 없다 하셨고 요양원으로 보내겠다 하셨습니다. 막내 아들 역시 외할머니를 모실수 없다 했고 결국 둘째 딸인 우리 어머니는 2주 동안 외할머니의 병간호를 하셨습니다. 매일 대변을 본 외할머니의 기저귀를 가셨고 외할머니에게 죽을 떠 먹이셨습니다. 매일 새벽에 외할머니에게 전화가 오면 외할머니가 계신 방으로 가서 무슨 일인지 확인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매일 어머니가 병간호를 할 수는 없는 일이여서 외가 친척들간의 합의로 외할머니를 요양원으로 보낼려고 하던 중 막내딸인 이모는 죽어도 요양원은 가기 싫다는 외할머니를 차마 요양원으로 보낼수는 없다며 본인의 집으로 외할머니를 데려 가셨습니다. 그렇게 2주 동안 막내 이모는 외할머니를 병간호 하셨고 이모가 잠깐 집에 나온 사이 외할머니는 당신이 평생을 살던 집이 아닌 막내딸 집에서 혼자 쓸쓸히 죽음을 맞이 하셨습니다. 태어나서 평생을 살아온 본인의 동네와 본인의 집을 돌아가시고 나서 한줌의 재가 되셔서 다시 방문하셨습니다. 당신이 늘 거닐던 앞 마당과 방안을 한바퀴 둘러본 뒤 그렇게 외할머니는 3월 따스한 봄날 그렇게 우리들 곁을 떠나셨습니다.

 

외할머니는 돌아가시는 순간 당신의 집을 그리워하셨을까요? 외할머니에게 존재하는 세상이란 본인의 동네와 집 밖에 없으셨을텐데, 본인의 세상을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벗어났을때 얼마나 낯설고 서러웠을까요? 대소변을 가눌수 없어 늘 누군가가 기저기를 갈아줄때 외할머니는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젊은 시절 2남 4녀의 아이들을 키우며 부모 역활을 하시던 외할머니는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자녀들의 부모가 아니라 짐이 되 버린 자신을 발견했을때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누군가는 98세의 노인이 무병장수 하다가 두달 고생 후 돌아가셨다며 호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난 두달 동안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는 과정을 곁에서 본 바로는 삶은 비극일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합니다.

 

그리고 슬픔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가 현실적일수 밖에 없는 것이 더 가슴 아픕니다. 그 누구도 연민의 감정에 따라 결정을 내릴수 없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24시간 병 간호가 필요한 98세의 노인에 대해 자식조차 섣불리 나서 "내가 책임지고 이렇게 하겠다" 라는 결정을 내리지 못한체, 냉정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따져 결정을 내리는 모습을 보며, 또 그 결정에 대해 그 누구도 비난할수 없는 모습을 보며

우리의 슬픔까지도 돈과 현실에 의해 결정되는것 같은 생각을 지울수 없습니다.

슬픔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는 순수한 것이였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현실적인 문제에 의해 우리의 슬픔이 결정되는 것은 어쩔수 없지만 가끔 현실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슬퍼해 줄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 졌으면 좋겠습니다.

 

Friday, March 18, 2022 @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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