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 비움의 영성
Wednesday, January 05, 2022
얼마전 바르셀로나에서 가방을 소매치기 당했습니다.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날에 지난 4년간의 스페인의 삶을 돌아볼겸 바르셀로나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한국으로 귀국하기로 일정을 정했습니다. 오전 연구실 사람들과 짧은 송별회를 가지고 4년 동안 일했던 건물을 나왔습니다. 기차를 타고 바르셀로나에 도착하니 이미 날은 어두워져 있습니다. 숙소까지 가기 위해 두개의 케리어를 끌며 이슬비 내리는 바르셀로나 중심가로 들어 갑니다.
이 길은 예전부터 늘 걷던 길이라 별 다른 생각없이 잠깐 멈춰 마스크 때문에 습기가 찬 안경을 닦고 나니 눈 앞에 보이는 평소 늘 이쁘다고 생각했던 건물이 보여 사진을 하나 찍을려고 준비중입니다. 순간 어느 남자가 와서 내가 서 있는 건물 위에서 누군가가 무언가를 뿌려 내 옷에 뭐가 묻었다고 얘기해 줍니다. '아! 누가 위에서 장난을 쳤을까' 싶어 바로 옆에 있는 분수대로 가서 옷을 살펴보기 위해 메고 있던 가방을 벗고 옷을 잠시 살펴 봅니다. 그리고 고개를 다시 돌렸을때 벗어 두었던 가방이 사라져 있습니다.
아뿔싸!! 이제서야 소매치기들에게 당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빨리 생각해 봅니다. 다행히도 여권은 가방을 소매치기 당하기 10분전에 옷 주머니로 옮겼습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웬지 여권은 내 주머니에 둬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던것 같습니다. 아마 잃어버릴 타이밍에 앞서 어떤 보이지 않는 법칙이 여권만은 잃어버리지 않게 해 준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것은 내 노트북과 테블릿 PC 그리고 그외 여러 잡동사니들 입니다.
노트북은 개인에게 많은 의미가 있는 물건입니다. 개인의 정보는 물론 본인의 모든 삶의 흔적들이 차곡히 쌓여 있는 공간의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내 모든 데이터와 나의 여러 자료들이 한번에 사라졌습니다. 이 동일한 경험을 6년전에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네덜란드에서 학업중일때 크리스마스 연휴를 독일에 있는 친구집에서 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안에서 노트북이 든 내 가방을 내 자리 위 선반위에 올려두었는데 내릴때가 되어 선반을 보니 내 가방이 사라져 있는 경험을 했었습니다.
#73> 비움
Friday, January 1, 2016 얼마 전 기차에서 가방을 소매치기당했습니다. 가방 안에 노트북이 들어있었는데 갑자기 늘 사용하던 노트북이 갑자기 사라져서 무척이나 당황했었습니다. 노트북에는 각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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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정신이 아찔하여 기차칸을 이리저리 다니며 이미 잃어버린 가방을 찾기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우여곡절끝에 집으로 돌아와 당시 감정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73번째 칼럼: 비움).
‘영원한 것은 어디에도 없으며, 모든 것을 언제까지나 소유하고 있으려는 것은 무의미한 일’ 이라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생수업의 문구를 생각하며 잃어버린 것에 대해 위로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모든 데이터는 클라우드에 백업을 해 두었기 때문에 다시 백업 받으면 되지만 잃어버린 것은 데이터가 아닌 공간이라는 생각에 그 잃어버림이 더 크게 느껴지는 하루였습니다. 내가 이용하는 프로그램을 설치했었고 나만의 조건에 맞게 여러가지 기능을 설치해 두었을텐데 그 나의 작업 공간에 대한 상실에 대한 감정일 것입니다.
자주 사용하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지우지 못했던 프로그램, 버리지 못한 데이터 파일, 그리고 여러 가지 추억이 있는 자료들, 즉 내 의지로 지워낼수 없었던 많은 것들이 한번에 지워졌습니다. 이것들이 사라지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았던 것들이 막상 사라지고 나니 그렇게 큰 타격이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 합니다.
그리고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과연 노트북 이라는 내 작업공간에 있는 것 들 뿐일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나는 내 과거의 실패들을 여전히 버리지 못합니다. 늘 과거를 후회합니다. 그리고 그 과거 내 선택의 실패를 생각하며 후회 하기를 반복합니다. 그 과거의 실패가 현재의 내 삶에 침범해 나의 하루를 망쳐 놓는 날이 종종 있습니다. 과거에 대한 후회가 현재의 내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을 알지만 "만일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지금의 현재가 막연하게 더 나을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자기 욕심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내 아집을 여전히 버리지 못합니다. 나의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을 포용하기가 힘듭니다. 그것이 나와 관련이 없는 것일 경우 냉정할 정도의 무관심으로 전혀 그것에 관여하지 않지만 나와 관련이 있는 경우, 내가 가지고 있는 기준에 맞지 않을때 포용 하기가 무척이나 힘듭니다. 연인 관계에서도 늘 이 문제로 한발짝 더 나가지 못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누군가는 쉽게 포용하는 부분도 내게 있어서는 그것이 넘을수 없는 장벽으로 다가오는 것을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버릴수 없을 것만 같았던 내 공간의 흔적들을 한번에 비워내고 보니 그것들이 사라진다해도 새롭게 시작할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비워냈다고 생각하니 다시 채울수 있을것 같습니다.
내 욕심과 내 아집을 비워내야 겠습니다. 이것은 현실에 대한 타협 혹은 안주가 아닐 것이며 내 자신의 원칙을 포기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저 한번에 비워내보고 그 빈자리를 한번 다시 채워봐야 겠습니다. 한번에 비워낸 그 빈 공간에 과거의 실패를 생각하기 보단 현재의 나에게 감사하고, 내 원칙만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 들어오는 "나와 다름" 을 인정하고 표용하는 나로 다시 한번 채워봐야 겠습니다.
그래서 상실이 아닌 비움으로 받아들이고 내 삶에 더 필요한 것들을 채워넣을수 있는 비움의 영성을 실천해야 겠습니다.
Wednesday, January 05, 2022 @South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