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다섯 (in Spain)

#133> 기억의 조각 맞추기

엘트리고 2021. 4. 6.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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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06 April 2021

 

얼마 전 아주 오래된 책이 책장에 꽂혀 있는 것을 보고 문득 페이지를 넘겨봤을 때 바로 눈에 들어오는 문구는 "일일계획의 수립과 실행은 집중력과 시간 활용도를 높여 준다." 입니다. 이 책은 유명한 시간관리 강사인 하이럼 스미스의 저서 '성공하는 시간관리와 인생 관리를 위한 10가지 자연법칙'이라는 책입니다. 대학시절 자기 개발서에 한창 빠져 있을 때 스티븐 코비, 지그 지글러와 함께 하이럼 스미스의 책은 늘 1 순위 독서 목록이었습니다. 아무튼 오랜만에 책에 있는 내용을 실천하기 위해 일일 계획을 수립해 나가기로 마음먹게 됩니다. 엑셀 파일에 날짜를 나열하고 매일 그날의 목표를 적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렇게 일일 계획을 수립해 나가게 되면 비록 내가 집중력이 흐트러져 시간을 낭비했다 하더라도 내가 목표한 그 한 가지만 실천했다면 그 하루는 꽤 괜찮은 날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엑셀파일에서 날짜를 미래로만 나열하고 있을까? 엑셀 파일의 날짜를 과거로 위로 나열해 보는 건 어떨까? 

 

그래서 아주 작은 프로젝트로 내가 태어난 날을 기점으로 날짜를 오늘날짜 까지 엑셀 파일로 드래그해서 내려보게 됩니다. 이런 작업을 통해 알지 못했던 여러 가지 사실들을 알게 됩니다. 오늘을 기준으로 내가 지금껏 살아온 날은 14,731 일입니다. 즉, 나는 지금껏 14,731 번의 아침과 저녁을 맞이했습니다. 14,731번의 아침이라는 새로운 기회가 내게 주어졌는데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소비하며 살았는가에 대한 아주 묵직한 질문이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갑니다. 하지만 이 시간은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시간뿐만 아니라 10대 시절 주체적 마인드 없이 그저 학교에서 시간만 흘러 보냈던 시간들을 다 포함하고 있기에 이 전체 시간에 대해 이 시간의 무게에 대한 내 책임과 역할을 묻기에는 너무 과도해 보입니다. 그래서 성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대학에 입학했던 년도의 새해를 기점으로 오늘까지의 시간을 확인해 봅니다. 성인이 되고 지금까지 내게는 8,131번의 아침이 내게 주어졌었습니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Outliers) 에서 말하는 '1만 시간의 법칙' 이 생각납니다. 성인이 된 시점부터 만일 내가 하루에 1시간씩만 무언가에 지속적으로 투자했었더라면 나는 그 분야의 전문가가 거의 되어 갔을 텐데 말입니다. 내가 그냥 헛되이 흘러 보낸 1시간이 하루라는 간격 속에서는 아주 작아 보이지만 하루가 축적되어 나의 삶으로 다가왔을 때 그 차이의 정도는 무척이나 커 보입니다.

 

나는 하루라는 나의 시간을 내 삶의 역사로 만들고 있을까?

 

14,731 행의 엑셀파일로 할 수 있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즉, 내 기억의 조각들을 맞추어 나가는 것입니다. 자신만의 특별한 날짜가 있을 것입니다. 자기 생일이 되었든, 어떤 기념일이든 아니면 인생의 큰 이벤트 이든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특정 날짜가 있을 것입니다. 저에게는 5월 5일, 12월 29일이 그렇습니다. 뿐만 아니라 크리스마스 같은 연휴기간 역시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기엔 좋은 날짜임엔 틀림없습니다.

 

5월 5일만 엑셀로 필터링을 걸어 내 전체 삶에서 5월 5일 날 무엇을 했는지 기록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40개의 엑셀 행 중에서 단지 7개만 조각을 맞췄습니다. 처음 기억나는 5월 5일은 2007년 5월 5일입니다. 사실 5월 5일이 특별한 날이 된 시점이기도 합니다. 2007년 5월 5일 자신감과 성취감에 도취되어 미래는 늘 밝을 것이라고 자신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바로 그다음 해 5월 5일 인생에서 가장 큰 실패 중 하나를 경험하고 의기소침했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5월 5일에 대한 기억의 조각들 역시 그다지 유쾌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반면 12월 29일에 대한 기억의 조각들은 12개를 찾았습니다. 그 첫 시작은 2004년 12월 29일 입니다. 당시 가슴 아픈 마음에 혼자 일기장에 감정을 끄적거리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나머지 기억의 조각들은 2004년 과는 달리 여러 가지 유쾌한 기억들이 존재합니다. 이런 작업들을 크리스마스, 내 생일, 각종 연휴 등 내 뇌리 속에 남아 있는 기억들을 다 끄집어내서 기록해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특정 날짜를 필터링 걸어 해마다 같은 날짜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마치 내 삶에 대한 영화를 한편 보는 느낌입니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내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는 것이지요

 

그렇게 기억의 단편적 조각들을 묶고 묶어서 특정 날짜는 아니더라도 그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내가 기억하고 있는 일들을 중간 중간에 기록해 나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살아온 모든 날의 기억의 조각들이 맞춰지게 되고 이것은 아마 내 삶이라는 영화의 멋진 스크립트가 되지 않을까요?

 

Monday, 06 April 2021 @ Lleida, Sp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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