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용기
Monday, September 14, 2020
스페인에서 박사과정 3년 차 중입니다. 예정대로라면 내년 이맘때쯤 박사과정을 마무리하고 학위를 받을 것입니다. 2014년 이맘때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네덜란드에서 석사를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첫 번째 직장에서 직장생활을 4년 반 정도 했고 이직을 해서 새로운 직장에서 1년 반 정도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내 나이 35세가 되던 시점에서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원래 내가 꿈꿨던 삶이 완전히 소멸되어 간다는 생각에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6년 동안의 직장생활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용기가 어디서 나왔을까 의아해 지곤 합니다. 지금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 다시 동일한 선택을 하라고 한다면 아마 같은 선택을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딱 30대 중반이 된 나이에 회사를 그만두고 학업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다시 뛰어든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엄청난 용기였고 도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그 결정을 하기까지 1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네덜란드 대학에서 석사 합격 통지를 받고 2번이나 입학을 미룬체 고민만 하다가 1년을 소모한 것입니다.
이렇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아이러니 하게도 결심을 내릴 수 있게 해 준 사람은 당시 매일 언성을 높이며 싸웠던 직장 상사였습니다. 그 사람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나는 그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의 골이 끝까지 갔을 때 어느 날 혼자 저녁에 산책을 하면서 뭔가 내 결심에 선명해지는 무언가를 느꼈습니다. 2014년 11월 17일 저는 그날을 The call, 소명의 날이라고 불렀습니다.
즉, '내 인생에서 소중한 이 시간들을 이렇게 무의미하게 낭비하고 싶지 않다' 라는 인생의 중요한 진리를 깨달은 날입니다.
이 깨달음은 누구나 이야기 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것에는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특히 어린 나이가 아닌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수록 그 선택에는 수많은 장애물들이 존재합니다. 당시 사라지는 내 월급과 직장 의료보험, 연금들 그리고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내 적금들, 처분해야 되는 내 자동차, 이런 물리적인 장애물들은 독한 마음을 먹고 내가 정한 삶에 흔들리지 않겠다고 수십 번 다짐하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지만 가장 힘든 부분은 나를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혹은 내 선택을 철없는 젊은 치기(稚氣)로 단정하고 쉽게 말을 내뱉는 수많은 사람들을 마주하는 것이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출국전까지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있어 집도 정리하고 자동차도 처분하는 과정에서 6년 동안 매일 출근하던 곳이 있던 삶에서 어느 순간 그 어느 곳에도 소속이 없어진 내 상황에 무척이나 답답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신기하게도 이때쯤부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구글 포토와 내 핸드폰이 연동이 되어서 매일 찍은 사진들이 자동으로 구글 포토에 담겨 내 일상의 순간순간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 선택을 하기전에 살면서 처음으로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1년 반 정도 사귀면서 그 사람에게 내 목표와 꿈을 이야기했고 그때마다 그 사람으로부터 약간은 냉정한 반응을 들었습니다. 아마 그때부터 이미 나는 그 목표를 향해 가고 있었고 그 사람은 그 자리에 머물고 있었기에 어느 순간 우리들의 거리는 점차 더 벌어졌나 봅니다. 그 사람에게로부터 헤어지자는 말을 들은날 그동안 서로에게 지친 것이 많았었는지 더 이상 붙잡지 않고 그렇게 그 사람과 이별을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삶을 준비하던 그 해 겨울은 내 삶에서 가장 추었던 겨울처럼 다가왔습니다. 그냥 내 현실에 안주하고 살았다면 내가 혼자 앉아 있는 이 카페는 사실 그녀와 함께 웃으며 앉아 있는 공간이 아니였을까 하는 일종의 자책감과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내린 결정에 내 자신이 얼마나 확신하는지에 대한 의문감이 혼재된 혼란의 시간이었음에는 분명합니다.
이런 시간들을 회상해 보면 처음 얘기한것 처럼 지금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 다시 동일한 선택을 하라고 한다면 아마도 같은 선택을 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내가 회상하는 그 기억 자체만으로도 이미 나를 심하게 억누르는데 과연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과연 나는 그때처럼 같은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의문이 듭니다.
그리고 우여곡절끝에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네덜란드에서 석사를 마무리했고 좋은 연구 펀딩으로 스페인에서 박사과정 중에 있습니다. 철없던 20대 대학생 시절 '나는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더 해서 농학자가 될거야~' 라며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던 그 말의 책임감의 무게를 40대가 된 지금에서야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이 말의 무게를 이야기하면서 딱 2명 앞에서 늦은 나이에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한분은 20대에 군대 가기 전 늦은 밤 공원 벤치에 앉아 그분에게 내 꿈이 뭔지를 상세히 설명했던 분이셨고 다른 한분은 내가 늦은 나이에 유학을 결심했을 때 나를 금전적으로 도와주신 분이셨습니다. 첫 번째 분 앞에서는 철없던 그 어린 대학생의 그 말을 지금에서라도 지킬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한 나 자신에게 수고했다는 의미의 눈물이었다면 두 번째 분 앞에서의 눈물은 그런 꿈을 지원해 주신 감사의 눈물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우리 모두는 무엇이든 시작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시작을 하게 되면 어떻게든 그 상황을 이끌어 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특별하지 않고 우리가 특별하지 않기에... 그 당시 내가 내었던 그 용기는 젊은 날의 치기(稚氣) 였든 어릴적부터 꿈꿨던 내 꿈에 대한 구체적 실행이든 간에 중요한 것은 내가 내린 결정에 의심을 품지 않고 그 선택이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 하루입니다.
그 용기의 과정 속에 물리적 장애 혹은 심리적 장애가 내 자신을 억누를지라도 혹은 눈물 펑펑 쏟을 만큼의 감정이 찾아올지라도 내가 가졌던 그 용기의 순수함만은 늘 잊지 않고 간직해야겠습니다. 그래서 내게 다가왔던 그 삭막했던 네덜란드의 겨울 풍경이 훗날 내 노력의 결과로 포근한 겨울 풍경으로 다시 마주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Monday, September 14, 2020 @ Lleida, Spain